존 메이어는 1977년 10월 16일에 코네티컷 주에 있는 브리지포트라는 곳에서 출생했고 그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 어머니는 중학교 영어 교사였고 그는 형 칼과 동생 벤 사이의 중간 형제였고 페어필드 근교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현재 유망한 테니스 선수인 제임스 블레이크와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들은 3년 동안 학교가 끝난 후에 함께 오락게임을 했다고 하고 나중에 마이클 제이 폭스의 기타 연주를 본 후 악기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13살 때 아버지에게서 기타를 하나 빌리고 한 이웃은 카세트 테이프를 빌려주었고 이것은 블루스 음악을 향한 사랑을 틔우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후에 기타를 산 가게의 주인에게 음악을 배웠고 당시 메이어의 주된 주제는 부모님에 관한 것이었고 두 분의 갈등 많은 결혼 생활이 그로 하여금 본인 스스로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였고 2년의 연습 끝에 고등학생의 나이로 술집과 다른 장소에서 연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심장부정맥에 걸려 입원을 하기도 했었고 그때를 본인 안에 숨겨져있는 싱어송라이터의 기질이 탄생한 순간이라고 언급하고 있고 퇴원하는 날 밤에 첫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공황 발작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정신병원에 가야하는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불안을 억제하는 약물로 꾸준한 관리를 통해 이런 증상들을 계속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차서 버클리 음대를 진학하였고 1997년 클레이 쿡과 함께 아틀란타로 이동했고 둘은 오래 시간 활동을 하지 못한 2인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고 해체한 후에는 지역의 소규모 클럽에서 지속적으로 연주를 하며 기술들을 연습하고 연명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2001년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축제에 출연하고 그는 대형 음반 기획사와 계약을 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첫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콜롬비아 레코즈와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다음 앨범도 시장에서 매우 큰 인기를 얻어 수 많은 상을 거머쥐었고 2003년에는 최우수 남성 보컬 상을 받기도 하고 2005년에는 그이 원래 스타일이었던 어쿠스틱에서 벗어나 음악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준 블루스와 락 음악에도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고 이를 통해 많은 예술가들과 협업했다고 합니다.
승승장구를 하던 그의 앞에 몇가지 논란이 생겼고 결국 2010년 연예계생활을 잠시 뒤로했지만 다시 예전 팝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다섯 번째 앨범 작업을 시작했고 성대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앨범발매가 미뤄지기도 하였고 계획한 공연들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결과물은 이전의 작품들보다 시장에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본격적으로 2013년부터 활동을 다시 시작했고 2014년까지 전 세계에서 종합 약 2천만장이 넘는 앨범의 수익을 냈다고 합니다. 2015년에 다른 밴드의 멤버인 사람들과 팀을 이뤄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하고 다음으로 이룰 목표로는 가수가 아닌 다양한 분야를 꿈꾸고 있다고 하고 다채로운 선한 기업들을 위해 공연하고 있고 많은 매체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때까지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고 대학도 다니지 않을 것을 고려했지만 결국 두 분을 설득하는데에 성공하고 가수를 할 수 있었다고 하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은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고 그 중 하나는 작가의 삶이고 2004년에 한 잡지사에서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칼럼에는 개인적이고 대중적인 관심들을 모두 모아서 다채로운 강의와 함께 그의 견해가 실려있고 한 에디션에서는 구독자들에게 본인이 쓴 고아인 아이들을 위한 음악회에 초대하기도 했다고 하고 특히 트위터를 많이 이용한다고 하고 370만 정도의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합니다.
취미생활로는 시계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똑바로 된 맑은 생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는 다양한 명품 시계들이 즐비해 있고 관련 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고도 하고 한 회사에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담은 편지를 보내 변화에 대한 응원과 격려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