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음악가이자 싱어송라이터, 음반 프로듀서 및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며 예명으로는 하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요네즈 켄시는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악을 일본에서만 최소 420만 부, 그리고 700만 부 이상의 디지털 카피를 판매했다고 합니다.
1991년 일본의 도쿠시마현에서 태어난 요네즈 켄시는 어린 시절 다른 사람들, 그 중에 특히 그의 아버지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고 밝히기도 하였고 일반적으로 어머니만이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20세 이후에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하였으며 마르판증후군 또한 앓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켄시의 첫 번째 음악으로의 활동은 중학생 시절 학교의 축제에서 무대연주를 하기 위해 친구와 밴드를 결성한 것이 그 시초였다고 하고 그는 친구가 기타를 치는 동안 보컬 및 작곡가, 그리고 가끔 기타리스트의 역할을 맡았다고 하며 2007년 말에는 밴드의 홈페이지를 개설하기도 하여 직접 노래 가사와 단편 소설을 게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밴드를 위해 곡을 쓴 요네즈는 이후 하치라는 예명을 사용하여 한 비디오 공유사이트에 24개의 곡을 업로드 하기도 했지만 어떤 곡도 그다지 유명해지지는 않았다고 하며 가장 조회수가 많은 곡조차 23,000 조회 수에 그쳤다고 하고 이 시기 켄시는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오사카로 이사하여 미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곳에 있는 동안 보컬로이드 소프트웨어의 종류 중 하나인 하츠네 미쿠를 이용하여 노래를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이는 서서히 인기를 얻어갔다고 하며 마침내 2009년에는 처음으로 백만의 조회수를 기록한 노래를 내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부른 노래보다 보컬로이드가 부른 노래가 더 많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자신이 부른 보래는 삭제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2011년에 그는 7명의 뮤지션들과 함께 음악적인 역량을 넓히기 위해 영세 뮤지션들을 위한 독립적인 음악 레이블을 창설했고 이듬해 그의 데뷔앨범은 6위에 데뷔하여 45,00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고 현재까지 레이블에서 발매된 가장 큰 음반 중 하나라고 하며 이 음반은 음반매장들의 직원이 투표하는 시상식에서 수상한 하나라고도 합니다.
2013년에는 라이브 밴드와 보컬로이드 구미를 사용한 2년 반 만의 첫 보컬로이드 곡을 발표했으며 이듬해는 두번째 노래를, 그리고 같은 해 6월에는 인생에서 첫 콘서트를 열였다고 하고 특히 요네즈의 노래 중 하나는 도쿄의 지하철과 연계되어 사용되었다고 하고 이후 그는 계속된 앨범의 출시로 인기를 높여갔다고 하고 마침내 제 60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며 일본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고 합니다.
가장 권위있는 음악 프로그램 중 하나에서 라이브로 방송데뷔를 했고 자신의 대표 히트곡인 ‘레몬’을 자신의 고향인 도쿠시마에서 라이브로 연주했다고 하며 그의 인기를 절로 높아져서 영향력이 중화권에도 미칠 정도라고 하고 2019년에는 중국과 대만에서도 첫 해외 콘서트를 개최했으며 2020년 하계 올림픽의 주제가로 쓰인 노래도 공동으로 작곡했고 62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켄시는 자신의 모든 음악을 작사 및 작곡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또한 보컬로이드 곡에서도 모든 악기를 직접 편곡하고 프로그래밍과 믹싱 및 연주도 하는 매우 다재다능한 아티스트이며 그의 음악적 스타일은 일본의 무수히 많은 밴드들에게 감명을 받은 결과이며 마찬가지로 작사스타일 또한 일본의 유명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역량 또한 많은 삽화가들로부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음악 소프트웨어는 케이크워크라고 하며 그가 보컬로이드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보컬로이드2 소프트웨어와 하츠네 미쿠의 보컬만 사용하였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노래에도 메구리네 루카와 구미의 보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고 그 결과 그의 앨범 중 하나에는 다양한 보컬로이드의 목소리가 담겨있다고 합니다.
요네즈에게 가장 인상깊은 노래는 그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힌 18세 이전에 음악을 막 시작할 때 들었던 엄마라는 노래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노래 중 하나라고 답하기도 하였고 그 이유로는 그때까지 켄시가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기도 하였습니다.